6L6과 함께 만들어진 25L6, 과연 2A3의 후손일까? - Was the 25L6, Developed Alongside the 6L6, a Descendant of the 2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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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 오디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300B와 2A3 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 보겠습니다. 1936년 RCA가 발표한 25L6에도, 그보다 3년 앞선 1933년에 등장한 2A3의 유전자가 남아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역사책에 기록된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공관의 특성곡선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글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J-Album의 첫 번째 '진공관 계보 연구(Tube Genealogy Project)' 입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하는 '유전자', '후손', '혈통'이라는 표현은 역사적 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 철학과 전기적 특성의 연속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대부분의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는 낯선 이름, 25L6 . 이 진공관은 RCA가 1936년 11월 , 명관으로 유명한 6L6 를 발표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세상에 내놓은 빔 출력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처음에는 25L6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미 6L6이라는 뛰어난 출력관이 있었고, 보급형으로는 6V6도 훌륭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진공관의 종류는 이미 충분히 많았고, 출력도 애매한 25L6을 굳이 사용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장의 그래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래프 하나가 제가 25L6를 다시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림 1. 2A3와 6W6의 3극 접속 특성곡선 비교) (그림 1. 2A3와 6W6의 3극 접속 특성곡선 비교) 그림 1은 2A3(U1)와 6W6(U2)를 3극 연결했을 때의 특성곡선을 중첩한 그래프입니다. 절대적인 바이어스 전압은 다르지만 특성곡선의 형태는 매우 유사합니다. J-Album은 이러한 형태적 유사성이 설계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

진공관의 탄생 (3): 랭뮤어와 전자구름, 진공관 증폭의 비밀 - History of the Vacuum Tube (3): Irving Langmuir and the Secret Behind Tube Ampl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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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포레스트는 증폭이라는 기적을 발견했습니다. 랭뮤어는 그 기적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906년 리 드 포레스트는 Audion을 발명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처음엔 그의 Audion이 증폭이란 것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단지 2극진공관 처럼 검파의 효율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엔진을 발명했는데 폭발의 원리를 모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의 Audion은 동작했습니다.  하지만 붙안정했습니다.  어떤 관은 잘 동작했고,  어떤 관은 비슷하게 만들었는데도 특성이 달랐습니다. 사용 중에도 동작 특성이 바뀌곤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어느 정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왜?"를 묻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1909년, GE 연구소의 젊은 과학자  그 사람이 바로 어빙 랭뮤어(lrving Langmuir)입니다. 1881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09년 그는 GE 연구소에 입사합니다. 여기서 잠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GE는 어디서 왔을까요?  1892년, 에디슨이 만든 회사 Edison General Electric과 Thomson-Houston이 합병하여 General Electric이 탄생합니다. 에디슨은 최초로 열전자 방출되는 현상을 발견했지만 그냥 기록만 남기고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최초의 발견은 GE에 입사한 랭뮤어에 의해 철저히 연구되고 완성이 되었습니다. 진공관의 시작점에 있었던 에디슨 그리고 진공관을 과학으로 완성한 랭뮤어.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GE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연같지 않은 흐름이라 소름이 돋습니다.  ■ 랭뮤어는 무엇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당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관 내부에 남아 있는 가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드 포레스트 역시 마찬가지...

진공관의 탄생 (2): 드 포레스트와 삼극관(Audion)의 탄생 - The History of Vacuum Tubes (2): De Forest, Audion, and the First Tri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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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관이 오디온 지난 글에서는 진공관의 탄생 이전 역사 살펴보았습니다.  1883년,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연구하던 중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전구 안의 뜨거운 필라멘트에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날아가 금속판에 도달하는 현상이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에디슨 효과(Edison Effect) 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에디슨 자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897년 ). ). 톰슨은 그 정체가 전자(Electron)임을 밝혀냅니다. 1904년 플레밍은 에디슨 효과를 이용해 최초의 실용 진공관인 2극관(Fleming Valve)을 발명합니다. 그리고 불과 2년 뒤. 1906년 인류는 전자를 발견하는 단계를 넘어 제어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리 드 포레스트 (Lee De Forest, 1873~1961)  ■ 1904년, 플레밍의 성공  1904년 11월 영국의 전기공학자 존 앰브로스 플레밍은 세계 최초의 실용 진공관을 발표합니다. 당시 무선통신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니는 1901년 이미 대서양 횡단 무선통신에 성공했고 전 세계는 무선의 시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호는 너무 약했습니다. 멀리서 날아온 전파를 검출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던 것입니다. 플레밍의 진공관은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습니다. 플레이트 (+)와 캐소드 (-) 만으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신호를 검출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는데 검출된 신호의 크기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술자들은 더 나은 검파기를 원했고 신호 손실을 최소화 하도록 진공관의 검파 효율을 높히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사람이 드 포레스트였습니다.  ■  예일대학교의 젊은 발명가  리 드 포레스트는 1873년 미국 아이오와주 카운슬 블러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899년 예일대학교(Yale Univ...

진공관의 탄생 (1): 에디슨 효과와 플레밍 다이오드의 발명 - The History of Vacuum Tubes (1): How the Edison Effect Led to the Fleming Di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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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진공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300B, 2A3, KT88 같은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어떤 진공관은 전설이 되었고, 어떤 진공관은 신화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진공관의 이름만 들어도 소리를 상상합니다. 마치 오래된 명차의 이름을 들으면 엔진 소리와 승차감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 유명한 진공관들이 태어나기도 전, 오디오라는 취미가 존재하기도 전, 사람들은 음악을 더 좋게 들으려고 진공관을 연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해결하려 했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있습니다.  1883년, 에디슨은 전구를 연구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필라멘트 옆에 금속판을 하나 넣고 전압을 걸자 전류가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압의 방향을 바꾸면 전류는 흐르지 않았습니다.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상한 현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에디슨 효과(Edison Effect) 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이 현상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가였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구가 더 밝아지는가, 더 오래가는가, 더 많이 팔리는가였습니다. 전구 안에서 왜 그런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상을 발견하고 기록했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류는 바로 그 순간 전자의 흔적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전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 1883년 당시 과학자들은 전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897년,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Thomson)은 크룩스(Crookes )관 실험을 통해 음극선이 음전하를 가진 미세한 입자라...